하와이, 일상과 여행 사이 그 어디쯤에서

그리하여 2014년 여름, 나는 두 번째로 하와이 땅을 밟게 되었다.

한 번 와본 경험이 있는 만큼 남들보다는 수월하리라 기대했건만,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여느 교환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처음 배정 받았던 기숙사 방에서는 인근 고속도로의 소음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출국 전 잘 해결하고 온 줄 알았던 예방접종 문제 때문에 결국 도착한 이튿날부터  엑스레이를 찍으러 웬 낯선 동네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했다. 며칠 후 새로 옮겨 간 방에서는 자는 동안 벼룩인지 개미인지 모를 벌레들의 습격을 받아 온 다리에 물린 자국이 생기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좀처럼 들지 않던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고생하기도했다. 게다가 수강신청은 또 왜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인지… 그렇게 좌충우돌,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몇 주가 흘러갔다.

하루하루가 이처럼 새로운 사건과 도전의 연속이었음에도 큰 불평 없이 지냈던 것은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철저한 ‘여행자’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섯 달 간이나 집을 떠나온다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긴 했으나, 사실 처음엔 마치 조금 긴 여행을 온 듯한 긴장과 흥분 상태에서 지내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 놓인 나는 그 어느때보다 용감해졌고,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씩씩하게 훌훌 털고 일어났다. 새로운 일을 맞닥뜨리면 긍정적인 면에만 집중하려 노력했고, 작은 즐거움에도 온 마음을 다해 행복해 했다. 물론,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우울할 틈이 없게 하는 날씨 역시 큰 몫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와이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만난 어여쁜 무지개

하와이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만난 어여쁜 무지개

 

개강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한 친구는 만난 지 며칠—아니 사실은 몇 시간—만에 마치 몇 년은 알고 지낸 듯한 사이가 되었고, 일주일 후에 도착한 룸메이트는 내가 그동안 만난 모든 룸메이트들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친구였다. 수업에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내가 교수님의 말을 미처 다 알아듣지 못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자신의 노트를 건네주었고, 전공수업 교수님들은 출석을 부를 때마다 내 이름을 ‘이윤-쑨’이 아닌 ‘운-썬’으로 발음하기 위해 애쓰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축복과 같았던 날씨. 마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를 보송보송하게 말린 직후를 떠올리게 하는 하와이의 그 환상적인 날씨는 이 모든 경험을 한층 더 따스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과 흥분의 줄타기를 하는 동안은 줄곧,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집이 아닌’ 곳에 머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동아리 행사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문득 그 동네가 우리집처럼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짐을 깨달았다. 서울에 있을 때,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느껴지던 그 몸에 익은 안도감을 몇 달 만에 느꼈던 순간이었다. 여행의 설렘과 불안이 사그라든 자리에 어느새 일상의 안정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뿌듯하면서도 아쉬웠다. 그 날은 우연히도 내가 도착한 지 77일이 되면서 동시에 귀국까지 77일을 앞두게 되는 날이었다.

 
 그날의 인스타그램

그날의 인스타그램

 

여행보다 일상에 가까워지는 지점에 이르자, 시간은 나의 아쉬움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더욱 쏜살같이 흘러갔다. 특별히 이렇다 하고 기억할 만한 사건 없이도 며칠씩 훌쩍 흘러가 있곤 했다.

‘일상인’이 된 나의 마음에는 한층 여유가 생겼고, 때로는 게으름도 피우며 불평도 하게 되었다.

언제나 밝고 즐겁고 신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곳에서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의 빈도는 낮아졌되 폭은 더욱 넓어졌다. 기숙사 플랫메이트들과의 갈등으로 며칠씩 우울해하기도 하고, 룸메이트가 세탁실에서 옷을 통째로 도둑맞은 후엔 한동안 집 주변을 서성이는 노숙자들을 괜히 째려보고 다니기도 했다. 주말마다 강박적으로 여기저기 쏘다니던 예전과는 달리 방에서 쉬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킬 때면 또 멀리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왠지 수업에 가기 싫은 날은 슬쩍 농땡이를 부려도 보고, 과제 마감 전날에는 서울에서 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밤을 홀딱 새우기도 했다.

하와이는 이제 더이상 무지개가 지지 않는 천상 낙원의 휴양지가 아닌, 때로는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와이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냈던 다섯 달의 시간을 “일상과 여행 사이 그 어디쯤”이라 부르곤 한다. 일상과 여행 사이 그 어디쯤에서 바라본 하와이는 아늑했지만 때론 쓸쓸했고, 눈부실 정도로 뜨거웠지만 때론 어두웠다. 모든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나에게 하와이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들로만 가득차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잔잔하고 때로는 지루했던 일상 속에 형형색색의 특별한 기억들이 구슬처럼 박혀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귀중한 깨달음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일상의 편안함과 여행의 긴장감, 그 두 개의 마음 속 끈을 적절하게 잘 쥐고 있는 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장 충실히, 기억에 남도록 보내는 방법이라는 사실. 여행과 일상 사이에서 바라본 하와이의 기억은 늘 내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글쓴이 이은선 :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언어와 여행에 관심이 많다. 교환학생 시절 하와이대학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HKC에 합류하게 되었으며 현재 Korea Team 신설을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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